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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인간의 숨결, 온기 2

지난번에 김기현의 ‘인간다움’을 읽고 ‘인간의 숨결, 온기’라는 제목으로 한 페이지의 글을 올렸다. 책 내용이 인류사를 고대부터 미래까지 총망라한 방대한 내용으로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간다움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되어왔고 또 변화되어가고 있는가를 거시적으로 살펴본 지적 여행을 담고 있다. 한 페이지로 적어놓고 끝내기에는 너무 주옥같은 내용이어서 총 4편에 걸쳐 진정 작가의 심중을 헤아려보고자 한다.     작가는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조건으로 공감, 이성, 자유(자율)라고 학문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풀어나간다. 쉽게 한 마디로 풀이하면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가 바로 인간다움의 기본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타인을 나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나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 존중하는 모습이 인간적이라고 한다. 고대 철학자들은 이끌리는 삶과 개척하는 삶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비로소 신의 명령에 따라 행위를 하는 수동적이고 운명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자기 능력으로 삶을 가꾸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불과 도구의 사용, 손가락 사용 능력, 직립보행, 언어사용, 지능으로 자신을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에 올려놓았다. 수렵 생활을 접고 협력과 협동 같은 효율적인 결집력으로 대규모 집단을 만든다. 농업혁명, 물물교환을 통하여 내부의 결속을 위하고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앞세우고 사회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칭송하게 된다. 신화의 세계관에서 완전한 개인은 없다. 제사 문화, 가부장의 권위, 그리스 문화와 유교 문화 모두 가부장 사회다. 가족 중심의 유대관계는 점차 공존의 단위가 확대됨에 따라 씨족과 부족을 거쳐 고대의 도시국가 형태로 발전한다. 국가란 확대된 가족이다. 운명론과 신에게 자리를 내주고 인간이 조연으로 밀려난다.     BC 7~8세기경부터 인간도 삶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수동적 위치에서 개척자의 위치로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성’이다. 이성은 Logos로, 인간은 이성을 통해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적극적 관심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성의 도전은 운명에 이끌리는 삶을 거부한다. 소크라테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는 성찰이 없는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왔다. 좋은 삶이란 성찰을 통해 영혼을 돌보는 일, 이성의 지휘 아래 욕망과 기개를 절제하는 삶이며, 진정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행동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능력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 후 인간은 내면세계라는 집을 짓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평등의 정신이 향상되고 내면세계에 관한 관심이 점차 깊어질 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기획하고 성취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 또한 성장한다.     전쟁은 인간의 이성을 위축시킨다. 그리스 시대는 이성의 전성기였다. 전쟁이 유럽을 휘몰아치면서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이성이 두려움과 불안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신념은 소실된다. 로마가 유럽을 군사적으로 지배하면서 만들어진 문명을 로마 문명이라 부르지 않고 그레코- 로마 문명이라 부른다. 그리스 문명의 영향력이 그만큼 강했음을 의미한다. 중세 시대는 처세의 철학이 되어 스토아학파도 현실적 욕망 너머의 이성적 덕을 추구하고 에피쿠로스학파는 고통과 쾌락을 넘어선 영속적인 쾌락을 추구한다.     유럽 전체에 전쟁이 그치지 않으면서 혼란과 폭력의 세계에 위대한 신이 등장하게 된다. 유대교의 여호와는 그리스, 로마의 신들과 달리 압도적이다. 그리스, 로마의 신들은 Logos(법칙)를 지배하지 못하고 물리계의 자연법칙에 종속되는 존재들이다. 유대교는 다르다. Logos 위에 선다. 암흑 같은 혼돈 속에서 구원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할 때 사람들은 자연의 질서에 종속되는 신보다는 그것을 뛰어넘어 질서 자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신에게 의지하고 싶어진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숨결 온기 숨결 온기 그리스 로마 그리스 문명

2024-10-07

[삶의 뜨락에서] 인간의 숨결, 온기

‘인간다움’(김기현)을 읽었다. 중앙일보에서 이 책의 저자와 책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를 읽었을 때 거의 50년 동안 잊고 지냈던 아련한 단어 ‘인간다움’이 나를 흔들었다. 맞다. 거의 50년 만이다. 1972~1976년까지 대학을 마치고 1977년에 뉴욕에 왔다. 내 인생에서 뇌세포가 가장 활발했던 때가 대학 4년이었다. 간호학을 전공하면서도 나의 마음과 관심은 오직 독서 동아리 ‘자유 교양회’였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대학 4년을 보냈다.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인간성 상실과 회복’이라는 삶의 과제를 안고 미국에 와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이민자들이 겪어야 했던 문화적 충격과 언어장벽은 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다. 특히 나는 완벽주의자에 결벽증까지 있는 편이다. 이민 생활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핑계로 ‘눈치작전과 적당히’라는 삶의 요령과 서서히 타협해 가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실망하고 괴로워했다. ‘과연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이상적인 삶일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 당시 나는 이미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인간성을 갖춘 진정한 의사’가 되는 길이 가장 의미 있다고 결심하고 의예과에 지원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만 2년 공부 끝에 나는 탈진했고 쓰러졌다. 나에게는 이미 두 살, 네 살의 두 아이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단어를 잊고 살아왔기에 이 책을 신선한 충격과 설렘을 갖고 읽을 수 있었다.     저자 김기현 교수는 평생을 바쳐 철학을 공부하고 연구한 학자로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지적 여정을 이 책에 담고 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쌓아온 지적 유산을 조망하면서 존엄한 삶의 가치가 어떤 과정을 겪으며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지, 이 도전과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쉽고 편안한 문체로 풀어간다. 무엇이 인간다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 행복에 관한 생각이 달라지고 삶의 행동 양식이 달라지고 미래의 모양이 달라진다. 인간다움은 재능과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재능과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렸다. 이를 단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타인도 나처럼 희로애락의 정서를 갖고 행복을 원하며 자기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감정이입, 공감, 연민을 갖고 상대의 마음 상태를 읽어갈 때 상대도 나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 존중하는 모습이 인간적이다.     인간다움이라는 성품도 몇 가지 재료들이 적절히 결합해 만들어진다. 사용되는 재료는 공감, 이성, 자유(자율)다. 공감은 문명이 시작되기 전에 형성되었고 반면 이성은 상대적으로 기원전 7~8세기경에 씨가 뿌려지고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능력으로써의 자율은 14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싹을 틔운다. 인고의 과정을 거쳐 인류의 자산으로 자리 잡은 인간다움은 19세기에 수난을 겪게 된다. 이때부터 인간다움에 대한 믿음과 그에 대한 반발이 동시에 우리의 세계관에 자리 잡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다움에 대해서는 인공지능과 생명과학의 결합으로 탄생한 새로운 기술로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을 제기한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편리하게 해주는 기계에 의존하는 사이 인간다움을 이루는 자산의 힘이 묽어지고 있다. 사이버 불링(Cyber- bulling)은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고 인공지능이 선택을 대신 해주는 미래로 가고 있다. 빅데이터를 통해 데이터베이스가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데이터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이 발전하면서 기계의 판단에 의존하는 일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인터넷 사회에서 밀려드는 정보에 매몰되어 SNS에 정보를 올리고 업데이트하고 가짜 뉴스가 판치는 유튜브에 정신이 팔려 중요한 일은 밀쳐둔다.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이 시대에 따라 변하고 특히 현대사회에서 인간다움은 무엇을 뜻하는가. 무엇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가. 바쁜 미국 생활에 죽비 같은 울림을 준 단어, 인간다움! 나는 이를 인간의 숨결, 온기라고 말하고 싶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숨결 온기 숨결 온기 대학 생활 공감 이성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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